2024. 11. 12. 19:50ㆍ일상/후기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11월은 11월이었나보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었지만 실외에서만 가만히 서서 이야기 듣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히 추웠다. 감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코트와 면 스카프로 무장했어도 말이다. 그럼에도 귓 속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조근조근한 해설사님의 목소리 덕에 끝까지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아펜젤러 기념공원을 걷다가 만난 소녀상이다.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두 소녀. 일제 탄압을 피해 등사를 해야 했으므로 어두운 곳에 숨어 한복을 입고 댕기머리를 한 소녀는 등을 밝히고, 현대식 복식을 한 단발머리 소녀는 등사를 하고 있다. 정동제일교회에 커다간 오르간이 있는데 그 뒤에 공간이 있다고 한다. 아마 거기에 숨어서 이렇게 등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이 났다. 어린 나이에 참 대단한 일을 하셨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그 대단함이 배로 느껴졌다.


그 다음 만난 정동제일교회. 여기에도 어린 친구들이 현장학습을 왔는지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다니던 현장학습은 참 흥미가 없었다. 지금처럼 자발적으로 다닐 때는 모든게 새롭고 흥미로운데 말이다.
아무튼 정동제일교회에는 커다란 오르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여기서 유명한 사람들이 결혼과 장례식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 인물. 바로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여기서 있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는 출소 이틀 전 사망했다. 유관순 열사의 출소일을 알고 있던 유관순 열사 친구들이 출소일에 맞춰 서대문형무소에 찾아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유관순열사가 나오지 않고 일제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유관순 열사의 친구들은 당시 이화학당의 교장 룰루 프라이와 함께 가서 겨우 시신을 인도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처음 유관순 열사의 시신 인도를 거부한 것은 고문으로 시신 상태가 좋지 않아 이를 숨기기 위해 거부하였던 것인데, 외국인인 룰루 프라이 여사가 나서자 어쩔 수 없이 시신을 인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역시 치졸함의 끝. 역시는 역시다.
또 여기서 결혼한 유명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혜석이다. 나혜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여기서 단편적인 에피소드-혼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시대를 감안하면 정말 현대 여성의 사고 방식을 가지신 분이었다. 시가살이를 거부하고, 첫사랑의 묘에 참배를 하고, 결혼 후에도 그림을 그리고,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요청을 받아들여 김우영은 6년간 구애 끝에 나혜석과 결혼에 성공한다. 그럼에도 그 끝이 좋지 못해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 참 웃기는 일이다. 재혼인 김우영과 초혼인 나혜석. 나혜석과 김우영 모두 혼인 중 불륜이 있었으나, 김우영은 실제로 나혜석과 이혼 후 그 여자와 삼혼을 했으나 다른 비난을 받지 않았고, 수많은 비난은 정작 정신적 불륜 관계였다는 나혜석에게만 쏟아졌으니. 이 이중잣대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으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다음 지나가면서 본 덕수궁 돈덕전.
겉에서 봐도 상당히 화려한 아름다운 곳처럼 보인다. 대한제국의 연회장으로 사용되다가 철거한 것을 큰 돈을 들여 복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번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이 거리는 과거 외국 공사관이 많던 곳으로 현재에도 외국 대사관이 일부 자리하고 있어 경비를 서는 경찰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이번에 알았는데, 외교관은 대사-공사-영사 순으로 대한제국 당시 우리나라에는 외국 공사들이 파견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사를 파견할 나라는 아니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역사 배울 때 영국 공사, 러시아 공사 이렇게 배웠던 것 같다. 참... 뭔가 씁쓸하다.
중간에 러시아공사관 일부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덕수궁에 인접하여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은 높은 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덕수궁이 훤히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얕보였던 걸까 하는 생각이 절대 들어서 노여워 졌다. 감히 한 나라의 통치자가 사는 궁보다 높은 곳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았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지났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고종의 길을 지나 중명전에서 이 2시간 정도의 투어를 마무리 하였다. 중명전의 명자는 우리가 아는 ‘밝을 명’과 달리 앞 부수가 눈 목자를 사용하는데, 이런 한자는 없는 한자라고 한다. 이를 ‘눈 밝은 명’이라고 읽는데, ‘밝을 명’보다 우리나라 앞날이 더 밝기를 바라는 고종의 마음이 담긴 은어와 같은 거라고.
나라가 기울고 있고, 손발이 묶여있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범인이었던 고종에게는 너무 큰 짐이었으리라. 안타까우면서도, 능력없이 사람들 위에 단지 군림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속에서 울고 웃고, 분노하고 찬탄을 보낼 수 있었다. 끝나고 나니 추워서인지 상당히 지쳤으나 너무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이 부근이 이렇게 복원되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어서 서울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같아서 기뻤다.
이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해설사님과 서울시립미술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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